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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조객의 잉어낚시 - 완결

청풍조객 2011. 5. 12. 14:56

 

3부에서 계속..

 

한치앞을 가리고있던 물안개가 아침 햇살에 용틀임을 하면서  위로 올라가는가 싶더니,

어느새, 청명한 가을 하늘과 눈이 시리도록 푸른 파로호의 물결이 시야에 들어왔다..

어제 저녁의 치열했던 전투(?)와 방금전 노인의 잉어와의 한판이 아주 오래된 일처럼

순간의 장면들이 조각난 기억의 파편처럼 언뜻언뜻 머리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언제나 그랬다..

오래된 일도 며칠되지않은 일도 무심히 바라보고있는 물과 뒤섞여 머리속에서 뒤죽박죽

되면서, 멍청해 진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알수없는 상념에 사로잡힌다고 해야할까?

 

 제법 따가운 햇살이 머리위로 올라오는가 싶더니,

저멀리 물을 헤치고 우리를 태워갈 배가 조용히 미끄러지듯 우리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까지 노인은 낚시대 달랑 두대를 펼쳐놓고 있었는데, 멀리서 배가오는 것을 알아차리더니,

황급히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짐이래봐야  한 십년은 족히 펼치고 접었다를 반복해서

대가 삭은 파라솔과 그위를 덮은 비닐 그리고, 낚시대 두대와 우리에게 빌려주었던 코펠을

담을 따불백이 전부였지만..

 

형님과 시덥잖은 이야기를 주고 받느라 노인의 표정을 살펴볼 기회는 없었지만,

노인은 배를타고 나오는 내내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것 같았다..

 

"아, 고기를 놓쳐서 저러나 부다.. 아깝기야 하겠지, 꽤 큰 녀석 이었는데"

뭐 그리 크게 신경 쓸일도 아니고 해서 이런 생각을 하면서 배가 뭍에 닿자 예의상,

 

"간밤에 정말 고마웠습니다.. 영감님이 아니었으면 낭패를 볼뻔 했지요.."

라고 하면서 작별의 운을 떼었다..

 

"--------"

그러나, 역시 예상대로 노인은 가타부타 대꾸가 없었다..

 

배삯을 치르고, 차가있는곳 까지 걸어가려고(한 3~4분쯤 걸리는 거리였나?) 방향을

잡으면서 노인에게

 

 "그럼, 다음에 또 기회가 되면 뵙겠습니다"

라고 인사를 건네면서  차 쪽으로 몸을 돌리려 하는데..

 

"이보게들.."

"미안하지만, 잡은 고기 몇마리 나누어 줄수 없겠나??"

 

불과 하루 사이였지만, 노인에게서 어떻게 이런 공손한(혹은 풀에죽은) 말투가 있었는가

귀를 의심할 지경 이었다..

 

본래 나와 형님은 잡은 고기는 보통 방생하고 가는것이 그때 까지의 관례였지만,

당시 병상에 계셨던 아버지께 조림이라도 해드릴 양으로 잡은 고기를 가져 나왔고,

마침 형님도 임신한 형수에게 백숙을 해줄 요량으로 서울가서 고기를 나눌 생각 이었다..

그런데, 노인으로 부터 뜻밖의 부탁을 받고보니(그럴사람이 아니라고 단정짓고 있었을까?)

 

형님과 나는 동시에,

 

 "예?? 뭐라고요?? 고기를 달라구요??"

다소 예상밖이라 노인에게는 우리말투가 좀 퉁명스럽게 들렸을까??

의기소침한 노인의 시선이 좀처럼 우리쪽으로 향하지 못한채 땅만 바라보며

 

"안되겠나?? "

 

"역시, 안되겠지.."

 

 

그 짧은 순간에 참 별생각이 다들었던 것 같았다..

그러나, 결국

 

"그러지요.. 몇마리나 필요하신지.."

 

"큰놈으로 대여섯 마리는 되야 하는데.."

 

순간, 형님과 나는 좀 어이없는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허허.. 이런.."

 

아버지 붕어조림은 다음에 해드리기로 하고 열두어마리 되는 고기중에서

아마도 일곱마리 정도를 노인의 손에 건네 주었던 것 같다..

 

"고마우이.. 내 다음에 꼭.."

그게 그노인과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마침 업무가 바뀌어서 업무익히랴, 결혼준비하랴(그해 11월 결혼)

정신없이 하루를 일주일을 몇 달을 보냈나 보다..

 

이듬해 5월 중순경 이던가?

신혼의 재미에 빠져 4월 물낚시도 한번 못가고있던 차에 어느 금요일 오후 형님께

뜻밖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 영감 죽었다는것 같지?"

"누가 죽어요??"

"아, 왜 그 파로호 영감말이여.. 고기 뺏어간.."

"형님이 그걸 어찌안담??"

"사공 아저씨가 그러두만"

"아니, 형님은 거길 언제 또 갔수??"

 

그영감과 헤어지고 난후 기실, 나도 영감이 놓친 잉어의 늠름한 자태에 홀려서,

잉어낚시라도 해볼까 하는 막연한 마음을 갖고 있었지만, 시즌도 끝나가고 언급했던대로

회사일이며 결혼이며 도저히 낚시할 여유가 나지 않았었다..

하지만 형님은 아마도 그 잉어에 꽤 감명을 받은것 같았다..

서울로 돌아온 그날 저녁에 당장 남대문에 들러 잉어낚시도구를 사고  그다음주 부터

파로호며, 소양호, 당시 물담기 시작한지 얼마안된 충주댐 등을 돌아다니며,

기십년 해온 붕어낚시일랑 팽개치고 잉어 전문꾼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형님의 권유로(내 의사가 더 좌우 했지만)이듬해 부터  잉어낚시로 종목을

바꾸게 되었던 것이다..

그 영감이 왜 죽었는지, 고기는 왜 필요했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이유를 설명해줄

사람도 없고, 또 뭐 그리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아직도 새벽안개를 헤치고 큰 잉어와 일대일로 힘을 겨루던 영감의 모습이

현재의 내 모습과 일치 하는것 처럼 느껴 질때가  더러 있는것 같아 가끔 영감을

생각하며 실소를 금할수 없는 내자신을 발견하면서  오늘도 푸른 물결을 바라보며,

도저히 실마리를 풀 수없는 상념에 젖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