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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조객의 잉어낚시 - 3

청풍조객 2011. 5. 12. 14:58

 

- 2부에서 계속

 

 

 

폭풍우 처럼 몰아치던 소나기 입질이 끝나가고 다시 낚시터는 평온 을 되찾았다..

이제는 완전히 어두워져서 코앞의 사물도 식별할수없는 칠흑같은 밤이 되었다..

 

"아, 이제 배가고프다 저녁이나 해먹어야지"

오랫만의 조과에 느긋해진 형님의 채근에, 랜튼을 키고 낮에 쳐두었던  텐트로 기어들어가서

먹거리며, 취사도구를 챙기기 시작했는데, 준비해온 음식이며, 버너는 있는데.

아무리 찾아도 음식을 끓일 코펠이 보이지 않았다..

아뿔사..

 

 

낮에는 배타기전에 들른 동네슈퍼에서 준비한 김밥과 음료수로 간단히 때우느라,

불을 피우지 않았는데. 그게 실수였다.. 그때 알았더라면 지나는 어부에게 미리 부탁해서

냄비라도 준비했을텐데.. 생라면에 생쌀에 생고기를 씹어야 하나??

 

"옆에 영감님께 좀 빌리면 안될까? 형이 좀 어떻게 해봐라.."

"니가해라, 난 아까 쪽팔려 죽는줄 알았다.. 퉁명스럽기는.. 원.."

영 마음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하루밤을 쫄딱 굶고만 있을수도 없고 해서 용기를 내어

영감의 자리쪽으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2인용텐트를 쳤고 영감은 낡은 파라솔위에 비닐을 치고 그안에서 꼼짝도 하지않고 있었다..

정말로 말한마디 하기가 이렇게 어려웠던 적이 입사 면접때 말고는 거의 처음이었던 것 같았다..

그렇지만 어찌 하겠나.. 심호흡을 하고, 최대한 공손한 목소리로,

 

"영감님.. 저, 혹시 뭐 코펠이나 냄비 남는것좀 있을까요? 저희가 깜박하고 미처 준비가 안되어서.."

 

라고 말을하면서 영감의 대꾸를 기다리는데, 그 기다리는 시간이 마치 예방주사를 맞을때

제차례를 기다리는 국민학생 처럼 초조하기가 이를데 없었다..

 

 

 

얼마간의 긴장된(?) 침묵이 흐르고 나서, 무엇인가를 찾는 듯한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이거면 되겠나?"

 

뜻밖에도 상당히 부드러운 목소리와 함께 영감은 파라솔 안에서 반쯤 몸을 굽힌자세로 코펠이 들어있는 주머니를 선선히 건네주었다..

뜻밖의 호의에 오히려 지레 겁을 먹었던 내가 당황해서

 

“아. 예.. 그거면 됩니다”

라고하면서 영감이 건네준 주머니를 냉큼 받아챙기면서,

 

“식사 준비되면 같이 하시지요? 이따 말씀드리겠습니다”

 

“- - - - - ”

또 대꾸가 없었다..

 

 

밥에 뜸이들고, 찌개가 보글보글 소리를 내기 시작할때 준비했던 고기를 코펠뚜껑에 올려 놓으면서

나는 영감 파라솔로 다가가서,

 

“영감님, 식사 같이 하세요?”

라고 사뭇 부드러운 소리로 말 을 꺼냈는데..

 

“아까 먹었어..”

 

“아이, 그러면 소주라도 같이 한잔 하시지요 뭐..”

 

“난 술 안먹어..”

그게 그날밤 영감한테 들은 마지막 말 이었다..

 

 

그날 저녁에 과분한 손맛을 본 우리는 옆자리 영감이 다소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오랜만에 느긋한 마음으로 밤늦도록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소주잔을 기울였다..

소주병이 몇병 쓰러지고 나서야 피곤함을 느끼고 내일 새벽 또한번의 진한 손맛을

기대하면서 누가먼저랄 것도 없이 텐트로 기어들어가 잠에 곯아떨어 졌다..

 

 

희뿌옇게 날이 밝아오도록 텐트에 쓰러져 정신없이 자고있던 내가 어설피 잠이깬것은,

간밤의 과음으로 뇨의를 느끼고 나서도 한참이나 뒤척인 다음이었는데, 반쯤 감긴 눈을

억지로 비비면서 텐트밖으로  기어나와 새벽여명으로 희부옇게 비치는 사물을

간신히 구분하면서 자리를 잡고 지퍼를 내려 시원하게 볼일을 보고나자 비로서 정신이

좀 들었다.. 영감은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해서 영감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았지만,

9월하순의 청명한 날씨가 만들어낸 담수의 걸작품- 물안개 때문에 적어도 2~3십미터는

떨어져 있는 영감의 파라솔은 커녕 1미터 앞도 분간 하기가 어려웠다..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나왔다..

 

“새벽 낚시는 무슨..”

 

형님이나 나자신이나, 당시 입사한지 기껏 2년이 안되는 사회 올챙이들 이었고,

회사업무에 매일 시달리다 정말 오랜만에 갖는 여유였고, 게다가 앞으로 또 이런 대박조황이 있을지

모를정도로 과분한 조과를 맛 보았으니, 긴장이 확 풀어져서 확률이 가장 높다는 새벽낚시도 포기하고 잠만 쿨쿨 잘 정도로 여유가 있었나 보다..

 

“이렇게 된것 잠이나 더 자야지”

 

몸을굽혀 텐트로 막 기어들어가려는 순간..

짙은 새벽 물안개를 뚫고 요상한(그때는 그랬다) 방울소리가 영감쪽에서 들려왔다..

 

딸랑딸랑딸랑(너무 빠르게 울려서 글로 쓰자면 차라리 따라라라락 이라해야 맞을까?)

잠깐 조용하더니 다시 따라라라라락 소리가 들리고 다시 잠시조용하고 따라라라락

이게 무슨 소리인지? 영감이 릴 낚시를 치는것은 어제 저녁에 얼핏 보아서 알았지만

나는 아직 그때까지 릴 낚시의 패턴(방법/기술이라 해야하나?)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호기심이 발동해서 바로아래 발도 잘 안보이는 짙은 물안개를 뚫고 영감쪽으로 다가서자

그제서야 영감이 파라솔 아래서 나오는 기척이 들렸다.. 영감은 낚시대를 단 두 개를 세워

놓았는데 그중 본류쪽으로 세워 놓은 대가 30~40도 이상으로 물쪽을 향해 꾸벅꾸벅 절을

하고 있었고 그 절하는 대 끝에 매달은 방울에서 대가 구부려졌다 펴지는 순간 소리가

나고, 대가 다시 물쪽으로 절을 할때는 방울소리는 나지않고 릴 스풀이 강제로 돌아가는

지지직 하는 소리가 나고있었다..

아무리 릴낚시를 해보지 않았더라도 그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는 충분히 짐작이 되었다..

 

“큰놈인 갑다..”

 

 

영감은 절대 서두르지 않았다.. 싸늘하던 영감의 얼굴은 마치 개선장군처럼 자신감이

넘쳐 흘렀고, 입가에는 뜻모를 미소까지 흐르고 있는것 처럼 보였다..

천천히 그러나, 솜씨있게 녀석을 풀어주었다 감아들였다를 반복하면서 녀석의 힘이 빠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3분, 5분 , 1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언제 잠이 깼는지 형님도

내 어깨너머로 영감의 한판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결국 녀석은 힘이빠져 점차 물가로 끌려나왔고 물가로 나온 녀석의 몸체를 확인한 순간

우리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눈은 소눈깔 만하고 꼬리는 붉은색을 띄는게 부채처럼 좌우

상하로 춤을추고 황금색 비늘로 뒤덮인 석자가 훨씬 넘어보이는 몸체는 그야말로 승천 하는

용을 연상케 해주는 번쩍거리면서 위풍 당당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영감의 입에서 탄식의 소리가 나온것은 바로 그때였다..

 

“이런..”

 

“할마시 약이 ..”

 

힘이 다빠져서 꼼짝 못하고 물가로 끌려나온 녀석이 영감의 잠깐방심을 틈타,

한두번 몸짓으로 어처구니 없게도 바늘이 빠져 물속으로 유유히 사라져 버린 것 이었다..

 

녀석과 씨름하던때의 득의만만하던 표정은 온데간데 없고 다시 어제 우리를 처음만날때의

무표정으로 어느새 돌아와있는 영감의 얼굴이 무서워서(왜 그렇게 느꼈을까?) 형님과 나는

얼른 우리자리로 돌아왔다..

 

할마시는 누구일까?? 보나마나 영감 안주인 이겠지..

그 안주인이 어디가 아픈가? 그런데 잉어가 무슨 약이 될까? 몇가지 생각이 교차 되었지만,

우리는 부지런히 채비를 거두기 시작했다.. 오전 9시에 배가 오기로 했으니까..

 

 

3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