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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조객의 잉어낚시 - 2

청풍조객 2011. 5. 12. 15:01

 

1부에서 계속..

 

노인은 얼핏 보기에 행색이 다소 초라해 보였다..

빛바랜 갈색 추레닝에 작업복바지.. 코끝까지 푹 눌러쓴 챙이긴 낡은 모자..

낚시가방대신 처진 어깨에 울러멘 군용 따불백 등이 얼핏 도시의 일반 낚시꾼들과는

상당히 차이나는 모습을 하고있었다..

 

노인은 우리가 자리하고있던 곶부리 포인트를 성큼성큼 지나더니, 우리 오른쪽 겨우 한사람

들어갈까 말까한 자리에 서서 한동안 반대편 쪽 산자락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아주 오랫동안 그자리에서 낚시를 했던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낚시짐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우리와는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은채로..

 

우리가 낚시하는 뒷면과 우리 왼쪽으로는 가파른 산자락 이었고, 우리오른편 쪽으로 골이져서

물이 들어와 있었는데, 당시 거의 만수위여서 골안쪽으로는 갈수기때 자라난 억센풀과,

작은 다년생 나무들이 밀생해 있는관계로 바닥사정이 낚시하기에는(특히 붕어 대낚시)

대단히 어려운 여건이었지만, 노인은 그런사정을 아는지, 알면서도 모르는체 하는건지

무심한 표정으로 따불백 안에서 낚시장비들을 하나하나 꺼내고 있었다.. 

 

오지랖 넒은 형님이 기어이 참지못하고 노인곁으로 슬그머니 다가서서,

 

"영감님, 여기는 바닥이 좋지않습니다.. 뭐 하시면 제가 자리를 빼드릴 테니 제자리에서

 짐을 푸시는게 어떻겠습니까?"

 

 하면서 운을 떼었는데, 노인은 마치 귀가없는 사람처럼

 가타부타 대꾸도 없이  채비를 꺼내는 손을 부지런히 놀리기만 하고 있었다..

잠시 어색한 정적이 흐르고, 다시 참을성 없는 형님의 과잉친절 정신이 발휘되어,

 

"제가 여기를 몇년 다녀 보았는데 여기는 바닥이...."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노인의 다소 날카로운 쇳소리 섞인 목소리가 형님의 호의를 

단번에 원천 차단해 버렸다..

 

 " 알아!!"

 

그순간, 나는 영감쪽을 얼핏 쳐다보았는데 모자속으로 반쯤 감춰져 있던 영감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고, 모자그늘 속에서 번뜩이는 영감의 두눈을 보는순간, 갑자기

서늘한 기운이 등을 타고 온몸에 퍼지며 섬뜩한 기분이 들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영감의 얼굴을 외면해 버렸다..

 

 에구 무시라..

 

참, 일이라는게 묘하게 전개가 되기 마련인가보다..

노인의 두눈을 똑바로 보지못하고 고개를 돌려 노인의 시선을 피하면서 습관처럼

펼쳐논 낚시대 찌를 바라보는 순간, 세칸반대의 찌가 예신도없이 물속으로 쑥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어??어!!"

 

반사적으로 낚시대를 채는 순간 "핑" 하는소리와 함께

 "이거 보통놈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들면서 오랫만에 묵직한 느낌이 온몸으로 밀려들기 시작했다..

 

"앗!!, 큰놈 이구나!!"

 

새벽다섯시에 서울을 출발해서(당시 서머타임이 실시되던때라 다섯시면 완전히 한밤중)

대략 아홉시부터 시작한 낚시가 하루종일 잡어 입질도 없다가, 하필이면 퉁명스러운 노인과

말을 섞자마자 소나기 입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둑어둑해 질때까지, 형님과 내 낚시대를 가리지않고 열차례 이상의 입질이 들어왔으며,

꺼낸놈들의 사이즈도 작은놈이 준척이요, 큰놈은 거의 4짜에 육박하는 놈들이었으니..

산란기 때 말고는 이렇게 마릿수에 씨알굵은 놈들을 만나본게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 이었다..

해가 넘어가고,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는데도 그야말로 케미를 꺽을 시간이 없을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