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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조객의 잉어낚시 season2 제2부 - 청풍호의 노인들 2화

청풍조객 2012. 11. 12. 19:02

 

 

쿠쿵”

여느때 처럼 아침 일찍부터 인민군들의 포화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오늘은 좀 인민군의 포격이 영 시원찮은것 같았다..

여느때 같으면, 고개를 들수 없을 정도로 아침시간에 집중되던 포화가

그저 형식적으로 진지 이곳저곳에 산발적으로 떨어지더니, 이내 멈춰버리고

주위는 늦여름 아침의 적막함으로 돌아왔다..

 

 

“이눔덜 탄알이 다 떨어져 가나?”

소대 고참인 박XX일등중사가 철모를 고쳐쓰고 주먹밥을 담은 양동이를 들고

길게 뻗은 참호 저편에서 엉금엉금 기어나오면서 적진을 힐끔 보면서 내뱉듯이

“그러게, 한 두어달 쏴붙이더니 제놈들 이라고 별수 있겠나?”

 

 

전선에서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언제나 먼저 돌기 마련인데,

유엔에서 전쟁에 참여키로 했으며, 머지않아 미군의 대병력이 일본과 미국본토에서

한반도로 증원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래서 그런지, 요며칠간 인민군들의 공격횟수도 점차 줄고 준비포격도 확실히

줄어들었다.. 오전에 대대본부에서 작전회의가 있다고 전령이 아침일찍 다녀가서

대대본부로 출두하려고 박 일등중사에게 진지정비를 맡기고 진지를 벗어나, 본부까지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3중대 일행과 만나게 되었다..

 

 

“어때, 광근이는 잘 하고있나?”

“걱정말게, 나이답지 않게 맡은임무를 잘 해내고 있어”

“허허, 아직 나이가 어려 물불 못가릴텐데, 다시 말하지만, 이번에 교대될때 까지 자네가

좀 잘 돌봐주게, 어머니가 끔찍이 아끼는 아이일세..“

 

 

병력의 부족으로 3중대의 태반이 지원학도병으로 보충 되었고, 그중에 뜻밖에도

막내동생 광근이가 중학5학년의 나이로 지원입대해 이곳으로 배치 받게 되었다..

처음에는 대대장에게 사정을 해 보았으나, 현 상황에서 그런말이 먹힐리 만무였다..

다행히, 낙동강 방위선에서 진격을 하게 되는 경우 학도병들은 낙동강전선에 남아

있게된다는 육군의 방침과 3중대장이 고향중학 동기여서 위험한 작전에는 한발 뒤로

물러서게 하라고 각별히 부탁 까지 했었다..

 

 

“어제, 맥아더원수가 이끄는 미 해병사단이 인천에 상륙했다..”

와 하는 함성이 대대본부 전체를 뒤엎었다..

대대장교들의 환호가 끝나기를 참을성있게 기다리던 대대장이 힘있게 덧붙였다.

“이제, 우리는 낙동강전선을 뒤로하고 전진한다”

다시, 함성이 울려퍼졌다..

그때,

 

 

 

 

“슈슈슈슉”

“펑” , “펑”

인민군의 76밀리포 포탄이 본부 근처에서 작열하기 시작했다..

대대장의 인상이 험악해게 일그러지더니

“시팔, 아주 마지막 발악을 하는구먼”

 

 

그런데, 이번 포화는 요며칠간의 어수선한 포격과는 그 질이 달랐다..

대대본부는 물론, 4,5백미터 앞에있는 참호근처에 집중되고 있었다..

탄막의 밀도는 시간이 갈수록 더해졌고, 특히 광근이가 있는3중대 쪽 참호에

집중되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나는 3중대 참호쪽으로 내달렸다..

 

“김중위 위험해 ! ”

최중위가 외치는 소리가 작열하는 포탄사이로 들린것도 같았다..

이곳저곳에서 파열하는 포탄사이를 뚫고 미친듯이 울부짖으면서 3중대 참호쪽을 향해 뛰었다..

"광근아  안돼!!"

거의 참호에 다다를 무렵,

갑자기 엉덩이를 세게 걷어차인것 처럼 충격이 오더니 몸이 허공에 붕 뜨는것을

느꼈을때 포탄의 폭발음이 바로 옆에서 귀를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미군이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자, 낙동강 전선의 인민군이 퇴각하면서,

퇴각로를 확보하기위해 국군방위전선에 집중포화를 퍼붓고 그 와중에 나는

왼쪽 엉덩이뼈 일부와 왼쪽 손가락 세 개를 절단해야 했다..

그건 별로 아프지 않았다.. 평생을 불구로 살아야 한다는 자괴감도 그렇게

심각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광근이가 그날 인민군의 집중포격으로 허무하게 이 세상을 떠나 버렸다..

 

 

 

 

여기까지가 노인의 이야기였다..

아마도, 대략 열 번은 넘게 들었을 것이다..

노인의 성이 김씨이고, 동생이 광근이고, 625때 전사했고..

김노인은 남들과 이야기 하는법이 없었다, 유독 내게만 아는척했고, 특히

이런 이야기 따위는 나를 제외한 근처 낚시꾼들에게 입도 뻥긋 하지 않았다.

나중에, 김노인이 낚시터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을때, 근처 낚시꾼들이 김노인이

다리를 약간 절며, 왼손 손가락 세 개가 없는 불구인지 조차도 몰랐으니까..

 

 

 

초봄의 중전 풍광

 

 

나는, 김노인에게, 바늘 목줄 만드는 방법을 배웠다..

또한, 당시 혁신적이라 할 수 있었던 추 매는 방법도 배웠고,

먹이로 황옥을 쓰는 방법도 알게 되었다..

이런방법들은 노인들이 이전부터 써왔던 방법일지는 몰라도,

인터넷에 잉어낚시가 소개되어 인터넷을 통해 제법 한다하는 낚시인사들

조차도 위  김노인의 방법을 아는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의 중전은 IMF가 막 시작되어, 낚시꾼들로 넘쳐 났었다..

도대체, 정체를 알 수없는 사람들이 낚시포인트에 자리를 잡으면, 한달은 물론이고

두달도,세달도 좋고 이건뭐 일주일에 서너번 이상 나오는 내가 가끔(?)낚시 나오는

젊은이로 치부 되었으니.. 말해 무었하겠는가?

 

 

 

지난 삼년간 충주호 전역을 누비다가, 비교적 집에서 가까운 곳에 이제 막 자리를 잡고

제대로 낚시를 좀 해볼까 했는데, 전국에서 밀려드는 장박꾼들 등쌀에 도통 원하는 자리에 앉을수가

없었다.. 김노인 이라도 있었으면, 대충 비집고 할 수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김노인도

보이지 않게 되었고.. 청풍면 어딘엔가 집을 얻어놓고 산다고 했는데, 어딘지 가보질 않아

그이후 김노인의 안부는 도통 알 수 없었다..

이전에도 그래왔던 것처럼 또 한 사람과 말없는 이별을 했던 것이다..

 

 

물론, 꼭 김노인만 알고 지냈던 것은 아니다, 나보다 나이많은 낚시선배들을 여럿 보았고,

비슷한 연배로는 지금까지 알고 지내는 조사장과도 이무렵 만났고, 지금은 서울어디로

이사갔다던 허씨, 의자공장을 했던 강씨등 IMF의 여파로 30대에서 70대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했었다..

 

하지만, 이무렵부터 약 1년이 넘게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낚시터를 빼곡이 메우고 있었다,

낚시를 가려고 마음을 먹어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울화가 치밀곤

했으니, 포인트를 뻔히 알고도 낚시를 하지 못하는 심정은 꾼이라면 누구나 공통으로

갖는 심정 이리라.. 그런데, 이즈음 지금까지의 잉어낚시 통념을 뒤엎어 버릴만한 일이

(적어도 내게는) 일어났으니, 이사건을 계기로 나의 잉어낚시는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던 것이다..

 

 

청풍조객의 잉어낚시 season2   제 2부 끝.